입사하고 좋은 글들이 많아 종종 들리다가, 최근에 제가 느낀 생각이 있어 남겨봅니다.

무엇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쉽습니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공포과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흥미와 필요에 의해 힘든 시간을 몇 번 넘기다보면 견딜만해 집니다.
꾸준히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연습하면 금새 익숙해지고 해당 분야의 초중급이 되며, 
이 후로는 선택에 따라 더 발전시킬 수도, 다른 분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업무/공부/운동 등 모든분야의 학습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경험적으로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 힘든 시간을 넘길때의 환경입니다.
누군가 어느 시점이 힘든 시점이라고 가이드를 해주거나,
힘든 시점을 보다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거나,
이미 경험적으로 인내가 가능한 상태의 차이에 따라, 익숙해지는 시간이 매우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어렵고도 쉽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이 익히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서, 한계가 보이고 막막하다면, 몇 달 간 묵묵히 반복해보십시오.
무작정 반복하기보다 어떻게하면 익숙해질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질문해야 됩니다.

저도 글로는 이렇게 쉽게 쓰지만, 지속적인 실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일인지 압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흥미와 보상 및 필요의 강도에 따라 익숙해지는 시간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저도 항상 실천이 부족하지만, 혼자 생각하고 있는 방법을 참고해보시는 분들이 계시길 바라는 마음에 글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 세이노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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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부모한테서 상가빌딩 한 채 물려받아 꼬박꼬박 월세 받으며 사는 사람일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와서 자신이 해놓은 일, 제 삶의 흔적 없이 타인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삶이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핍박받지 않는 삶을 원하지만 작은 빌딩 하나 갖는 것을 일생의 꿈으로 여기는 인생은 너무 왜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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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참 생각 많고 철학서적, 종교서적 탐독할 때였다.

전경이라서 근무서며 맨날 다른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28살 이병에게 질문했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들이 너무 복잡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기가 참 힘들다.

나이가 들면 이런게 좀 더 쉬워질까??

28세 이병이 대답하길

나이가 들수록 판단을 하는데 선택의 폭이 좁아듭니다. 비판없이 선택하게 되고

자신이 선택할 걸 쉽게 바꿀 수 없게 됩니다.


28세 이병의 몇 마디로 인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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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이 나오지 않았던 2년전 이야기입니다. 극장판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을 시청하고 아쉬웠던 부분은 세가지이다.

 첫째로는 본과제의 중점인 해설의 부족, 둘째로는 5부작 중에 2부가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다큐성의 진정성의 부족, 셋째로는 우리와 다른 점을 부곽시킨 점 등이다. 이중에서 전근대적인 특징을 포괄적인 입장에서 설명하지 못한 해설적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마존의 눈물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부족은 총 다섯 부족이 등장한다. 순서대로 말해보면 조에족, 와우라족, 마티스족, 자미나와족, 야노마미족 등이다. 카페에 게재된 전근대적 사회의 특징에서 보자면 아마존의 눈물의 해설에서는 부족들의 설명들의 개연성이 적고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다. 다섯 부족들의 대표적인 특성에 대한 고찰은 없고 부족들의 문화와 현재 처해있는 위험들에만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다. 부족들을 소개한 순서나열은 부족들의 생활양식변화에 따른 시점인 점에서는 좋았다. 하지만 이들을 나열만 해놓고 인과관계 라던지 개연성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조에족의 경우와 마티스족의 경우를 비교분석 및 특성을 고찰해보았다면 조에족은 원시수렵에 의존해 소비를 위한 생산을 하지만 마티스족은 조에족과 같은 원시수렵에 의존해 살아왔지만 현재에는 자본주의 시장과 접목된 교환을 위한 사냥품 생산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비교했어야 됐다. 이는 전근대적 생활양식과 현대 자본주의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부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자미나와족은 마티스족의 상황에서 좀 더 진행된 단계의 사회양식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도시자본주의와 결합해 보려 했지만 현 상황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떠돌거나 구걸생활로 생활을 연명해가는 점을 잘 보여준다.

 본문의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기술적 진보의 큰 모순들 중의 하나는 기술진보가 더 높은 생활 수준이 아닌 더 낮은 생활 수준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 문장이 아마존의 눈물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눈물은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만을 부곽할 뿐 현재 한국인들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혀 전달해주지 못한다.

 이에 아마존의 눈물의 해설이 김남길인 점과 비슷하게 다큐 또한 버라이어티적인 성격이 강하고 현사회를 뒤돌아 본 점이 부족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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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이점

사고의 확장 2011. 12. 17. 03:48



 종교를 갖는 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사회, 집단에 소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70~80년대 사회를 거쳐 학연, 지연의 의미가 쇠퇴되고 종교적으로 연결된 집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개독'이란 말이 등장한 것도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97년 IMF 이후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유대감을 상실하고 공적 가치가 무너짐으로 인해 종교에서 사회 공동체적 재구성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1년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인 유대감을 느낄만한 집단과 소속이 약해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큰 결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의지가 될 수 있는 종교를 가진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또한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앙심(유일신 계열 종교)을 갖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목표나 목적이 뚜렷해지고 내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집단에서 주어지는 일방적인 신념과 의지를 여과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집단 구성원들과의 효과적인 유대감을 갖기에도 효과적입니다. 

 저도 한때는 이런 장점들을 얻고자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 배화교 등의 경전을 읽고 신앙심을 가지려 노력해 보았지만 믿음이 없는자의 헛된 욕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심 깊은 친구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은 무교인 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는 종교인들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진실되고, 의심없는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목사나 신부 중에서도 죽음앞에서의 신앙고백 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실된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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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무성씨의 작품이다. 조금은 억지가 있지만 큰 줄기를 알 수 있어 유용한 자료이다.

솔직히 말해 이전부터 1세대를 모토로 마케팅을 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또한 그림이  남무성씨의 인맥 트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주관적인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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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를 확장하는데 있어 시대를 관통하는, 관통했던 시대주의적 이념을 이해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학수업에서 배웠던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 정리된 네이버 백과사전의 글을 옮겨왔다. 본문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사상과 경향들을 꼬리를 물며 이해하다보면 한층 확장된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
-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을 비판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운동을 통틀어 모던 아트(modern art)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으나, 이것을 대국적인 견지에서 말한다면 19세기 예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사실주의(리얼리즘)에 대한 반항운동이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형태였다. 

한국 문학에서는 1931년경 프로문학의 퇴장과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대두를 계기로 나타났으며, 일명 주지주의라고 일컬었다. 김기림()이 시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시작() 자체의 의식성을 강조하는 시의 기술주의()를 주장하면서 형태화하였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시운동을 벌였으며, 그 특징은 
① 정서적 우세에서 지성적 우세로, 
② 현실에 대한 초월적 태도에 대하여 비판적 적극성을, 
③ 청각적 요소에 대하여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소설에서는 1934년 최재서()가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고, 실제로 이상()의 작품을 중심으로 심리주의적 경향을 비평하면서 전개되었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대표적 문인들로는 프랑스의 P.발레리영국의 T.E.흄, T.S.엘리엇, H.리드, 헉슬리 등의 이론과 작품의 영향을 받은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장서언() ·최재서() ·이양하() 등이 있다. 김기림의 장시 《기상도()》(1936)는 엘리엇의 《황무지》의 영향을 받은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작이며,김광섭() ·김현승() 등의 시인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1950년대의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등과 ‘후반기’ 동인들에 의해 모더니즘 시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대의 ‘현대시’ ‘신춘시’ 동인들은 1930년대의 모더니즘시가 상실했던 상징적 내면의식과 초월의식을 형상화하려 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62659



포스트 모더니즘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문화예술의 경우는 시기구분이 좀더 세분화된다. 19세기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전반 모더니즘(Modernism)이었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발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사실주의는 대상을 그대로 옮길 수 있다는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에서는 원근법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실물처럼 그릴까 고심했다. 

문학에서는 저자가 객관적인 실재를 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줄거리가 인물을 조정하여 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런 사실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베르그송의 시간의 철학 ·실존주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객관진리, 단 하나의 재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서 도전받는다. 대상은 보는 자의 주관에 따라 다르다는 전제도 미술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 입체파 등 구상보다 추상으로 옮아가고 문학에서는 저자의 서술 대신 인물의 서술인 독백(‘의식의 흐름’이라고도 함)형식이 나온다.

모더니즘은 혁신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재현에 대한 회의로 개성 대신에 신화와 전통 등 보편성을 중시했고 피카소프루스트포크너조이스 등 거장을 낳았으나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으로 대중과 유리되었다. 개인의 음성을 되찾고 대중과 친근하면서 모더니즘의 거장을 거부하는 다양성의 실험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상황이 반발의 측면이 강하지만 예술에서는 연속의 측면도 함께 지닌다. 비록 이성과 보편성에 의지했지만 이미 재현에 대한 회의가 모더니즘(현대성)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각 영역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술에서는 추상 대신에 대중성을 띄고 다시 구상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팝아트처럼 같은 대상을 여러 번 찍어 ‘다르게 반복하기’를 선보이는 경우, 모나리자 등 친숙하고 고유한 원본을 패러디하여 ‘다양한 재현들’을 선보이는 경우, 예술가의 권한을 축소한 미니멀 아트(미니아튀르) 등, 단 하나의 절대재현을 거부한다. 

문학에서는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고 다시 저자가 등장하는데 더이상 19세기 사실주의와 같은 절대재현을 못 한다. 작가가 자신의 서술을 되돌아보고 의심하는 자의식적 서술(메타 픽션), 현실과 허구의 경계와해, 인물과 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열린 소설, 보도가 그대로 허구가 되는 뉴저널리즘, 작가의 권한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기법 등이 쓰인다. 영화와 연극 역시 사실주의의 패러디로서 환상적 기법, 자의식적 기법을 사용한다. 무용에서는 토슈즈를 신었던 19세기 발레에서 맨발의 자유로움과 기법을 중시한 모더니즘, 그리고 다시 운동화를 신는 포스트모던 댄스로 대중성과 개성이 중시된다. 서사(narrative), 기호학 등 비평이론의 경계와해는 공연예술에서 탈장르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기능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밋밋한 건축에서 장식과 열린 공간을 중시하고 분산적이며 옛것에 현대를 접합시킨 패러디가 유행한다.

개성 ·자율성 ·다양성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이념을 거부했기에 탈이념이라는 이 시대 정치이론을 낳는다. 또한 후기산업사회 문화논리로 비판받기도 한다. 산업사회는 분업과 대량생산으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던 시대이다. 이제 컴퓨터 ·서비스산업 등 정보화시대에 이르면 공급이 넘치고 수요는 광고와 패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추겨진다. 빗나간 소비사회는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등 포스트모던시대의 사회정치현상은 한국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술 ·건축 ·무용 ·연극에서는 실험과 저항이 맞물려왔고 1980년대 말 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현은 한국 문학과 예술에도 포스트모던 바람을 일게 하였다. 근대나 현대는 서유럽에 비하여 짧고 급속히 이루어졌기에 시민의식과 기술산업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없었다. 서유럽과 한국사회를 똑같이 볼 수 없는 여러 상황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212069

 

 요약하자면, 모더니즘은 이성적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감성적, 인간적 사고를 중시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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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커뮤니티에 적었던 글을 수정없이 퍼왔습니다.



오늘 감상모임 시간에 퓨젼 재즈를 설명할때

 

문연듯 떠오른 비유였는데

 

이 말의 적절함에 큰 재미를 느껴 한 글 적는다 .

 

 

재미삼아 재즈를 라면에 비유해서 라면의 종류에 따른 재즈연대기를 살펴보면

 

20세기 초반의 재즈는 삼양라면이다.

 

'어른들은 국수와 같이 국수와 라면을 같이 삶아서 먹었다' 라고 하신다.

 

라면의 개념이 잡히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의 재즈는 봉지라면이다.

 

우리가 라면이라고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이 봉지라면이다.

 

물조절 불조절 파 떡 만두로 인한 다양하고 깊은 라면 맛을 느낄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오늘 설명했던 퓨젼재즈는 컵라면이다.

 

늘 새롭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컵라면은 항상 편하게 먹을수 있지만 그 깊은맛은 봉지라면을 따라가지 못함이기 때문이다.

 

 

현대재즈는 라면볶이 짜장볶이 치즈볶이 스파게티 등이다.

 

감각적으로 입맛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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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성격을 라면에 비유해 말해보자면

 

국물색이 빨강이 아니라면 라면 일까 아닐까? 

국물이 없다면 라면 일까 아닐까?

면이 얇다고 라면 일까 아닐까?

냄비에 끓여 먹지 않는다고 라면 일까 아닐까?

 

사리곰탕이 그러하고 라면볶이가 그러하고 스낵면이 그러하고 컵라면이 그러하다.

 

라면에 들어가는 것에 따라서도 같은 라면이 떡라면 만두라면 참치라면 치즈라면 등으로 불리운다.

 

물론 개인적으로 라면땅이나 뿌셔뿌셔 같은 것들은 라면이라 생각치 않는다.

 

이와 같이 판단은 자신의 머리속에서 0.1초만에 판단되어 지는 것 이다.

 

음악의 장르도 이와같다.

 

분식집에 아줌마가 신메뉴를 개발해놓고 메뉴판에다가 이름을 재즈라면 이라고 지어놓는다면

 

그때부터 그 라면은 재즈라면이 되는 것이다.

 

장르에 따른 음악의 기호는 개개인들의 판단의 숫자만큼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단지 이름을 붙일 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주 분위기를 듣는다는 그것이 곧 행복한 리스너의 출발이다.

 

공통된 성향을 가진 집단을 이루려는 인간의 내재적인 감정에서 올수 밖에 없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에 따른 구체적인 사항은 구성원들 마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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